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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아쉬운 오스카 후보 탈락

한국 출품작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예비 후보에 오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주류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점은 성과로 꼽힌다.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21일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10개 부문 쇼트리스트(예비 후보)를 발표했다. 모두 88개국이 출품한 국제장편영화 부문에서는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의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영국) 등 15개국의 출품작이 선정됐다. 아카데미는 내년 1월 11~16일 투표를 거쳐 2차 예비 후보를 선정해 1월 23일 공식 발표한다. 수상작은 2월 22일 최종 투표로 결정되며 3월 10일 LA 돌비극장에서 시상식을 개최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일커 차탁 감독의 ‘티처스 라운지’(독일)와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일본),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폴른리브스’(핀란드) 등과 경쟁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후보작에 오르지 못했지만, 주류 언론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 7일 뉴욕타임스(NYT)는 영화에 대해 “익숙한 장르에 계급 투쟁과 연민 실종 같은 잔인한 소재를 부드럽게 가공했다”고 평가했다. NYT는 이어 “사회적 무질서 속에서 인간다움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사실적이고 처절하게 보여준다”고 영화의 완성도에 주목했다.   엔터테인먼트 전문매체 버라이어티는 지난달 11일 기사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대해 “생존 의지의 혈투와 피가 어우러진 영화”라며“‘지진’(1974·감독 마크 롭슨)이 ‘파리 대왕’(1990·감독 해리 후크)과 교차한 느낌”이라고 분석했다. 버라이어티는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를 보면서 ‘만약 내가 이 영화 안에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면서 “역동적이고 어지러운 재난 영화 형식을 사용하여 인간과 집의 가치에 대해 깊이 고찰하게 되는 영화”라고 몰입감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엄태화 감독, 이병헌·박서준·박보영 주연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높은 완성도로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영화는 12월 현재 전 세계에서 2억7609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기록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약 38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올해 흥행 4위에 올랐다. 정하은 기자 chung.haeun@koreadaily.com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 국제장편영화 부문

2023-12-21

마지막 아파트를 지켜라…그 육중한 메시지

영화는 서울의 우뚝 솟은 아파트 단지에 대한 TV 다큐멘터리로 시작된다. 뉴스 캐스터는 아파트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다. 아파트는 한때 더 큰 집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에서의 아파트는 거주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아파트값의 오르고 내림에 따라 대통령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파괴력을 지닌 욕망의 실체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2024년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출품작이다. 아파트로 상징되는 한국인의 욕망을 재난영화 형식으로 표현한 디스토피아 드라마이면서 곳곳의 코믹한 톤에도 육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파트에 배 있는 한국의 천민자본주의를 아카데미가 얼마나 실감할 수 있을지가 수상 가능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겨울에 찾아온 멸망의 시간, 인류는 그들이 만든 콘크리트 더미 속으로 묻혀버린다. 쓰나미가 솟아오르듯 대지진이 일어나고 서울은 폐허로 변해있다. 한강까지 말라 버린 가운데 황궁 아파트 103동만은 온전히 살아 남아있다.     국가나 뉴스 기관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 시야에 들어오는 건 시체와 잔해들뿐이다. 민성(박서준)과 명화(박보영) 부부를 비롯한 103동 주민들이 구조를 기다리는 사이, 외부 생존자들도 이곳으로 몰려든다. 103동 주민들은 김영탁(이병헌)을 주민대표로 선출하고 급기야 외부인들을 몰아낸다. 그러나 식량이 바닥나면서 위기에 처한다. 그들은 ‘황궁’ 바깥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스스로 그들의 적이 된다.   결국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판단은 103동 주민들을 붕괴시켜 버리고 만다. 법과 윤리, 도덕이 사라진 사회, 오로지 날것들의 생존 경쟁과 강한 자만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한다. 주민들의 의식에도 피가 튀기 시작한다.     오합지졸 속에서도 명화는 보편적 양심과 상식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다. 김영탁의 모호함을 의심하는 그녀는 사람을 살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며 남편과 대립하고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영화의 공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엄태화 감독은 등장인물들을 절박하고 무서운 상황에 놓이게 하지만 옳고 그른 판단을 유보한다. 대신 관객들에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끔 유도한다.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융통성 없는 명화의 생각과 태도가 옳았음을 시사한다.     야만성과 광기가 상상력으로 표현된 디지털 이미지와 환상적인 세트로 합성된 황무지 영상은 인간의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나마 인간성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폐허 속에서 삶은 감자를 나누어 먹고 있는 바깥세상 사람들이었다.   김정 영화평론가아파트 메시지 아파트 단지 마지막 아파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2023-12-08

[컷 cut] 평범한 우리가 만드는 무서운 세상

대지진으로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아파트 한 동만 온전하게 살아남는다. 살을 에는 혹한 속에 사람들이 아파트로 밀려든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받아들였던 주민들은 외부인과의 충돌 사건을 계기로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다 같이 살아야죠”라는 이상론은 “그건 다 같이 죽자는 얘기”라는 현실론에 맥없이 허물어진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야기다.   주민들은 902호 영탁(이병헌)을 임시 대표로 선출하고 방범대와 배급 시스템을 구축한다. 첫 조치는 ‘바퀴벌레’(외부인들)를 내쫓는 ‘방역’이다. 왜냐고?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니까. 이 헌법 제1조는 주민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정당화한다. 대표 영탁은 말한다. “우리가 뭘 하든 죄책감 가질 것도 없고 자부심 가질 것도 없어요. 우리 지금 당연한 거 하고 있으니까. 가장이 가족 지키는 거.”   602호 명화(박보영)는 “사람이 어떻게 그래?”를 되뇌지만 ‘아파트를 지키자’는 구호 앞에 속수무책이다. 수많은 일들이 폭풍처럼 몰아친 뒤 아파트를 빠져나온 그녀에게 다른 지역 주민이 묻는다. “그 아파트에선 사람 막 잡아먹고 그런다던데?” 명화는 답한다. “아니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평범한’이란 수식어가 그렇게 무섭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우린 스스로를 평범하고 선량하다 여기지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떤 상황, 어떤 지경에 놓이면 그 주어진 ‘조건값’에 따라 행동하는 게 보통의 사람들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던 것도, 마녀 화형식을 했던 것도, 히틀러 지휘에 따라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냈던 것도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무서운 세상은 평범한 우리들이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 가족의 ‘유토피아’를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의 삶 따위는 언제든 ‘죄책감도, 자부심도 없이’ 저버릴 수 있는 당신과 내가. 권석천 /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컷 cut 콘크리트 유토피아 지역 주민 임시 대표

20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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